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라예보 사건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>작금(昨今)의 유럽은 화약고이고, 지도자들은 무기고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뿐이야. 작은 불씨 하나가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전쟁을 일으킬 거야. 언제 그 폭발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, 어디서 일어날지는 말해줄 수 있지. 발칸에서 벌어질 저주받을 바보짓이 폭발을 일으킬 거야. >---- >[[오토 폰 비스마르크]][* [[비스마르크 체제|비스마르크의 시대]]가 끝난 이후 유럽의 미래를 내다본 예언으로 비스마르크는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나기 16년 전인 1898년에 사망했다. [[영어 위키백과]]에서는 "논란의 여지가 있는 어록" 문단에 들어가 있으며 독일어로 된 기록은 있지도 않은 것 같다고 하며, 윈스턴 처칠은 알베르트 발린이 비스마르크가 죽기 1년 전에 "언젠가 유럽의 대전쟁은 발칸의~"라는 좀 더 간략한 버전으로 했던 말이라고 했다고 주장했고, 위의 전문은 안드레이 나브로조프가 1878년 베를린 회의 때 한 말로 인용했다고 서술되었다.] [[1914년]] [[6월 28일]]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의 추정상속인[*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'''공식적인 황태자는 아니었다.''' 오스트리아의 황태자였던 [[루돌프 프란츠 카를 요제프|루돌프]]가 자살하면서 황위 후계자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그 자리를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승계하지는 않았지만 황위 계승 서열 1위였으므로 추정상속인이 된 것일 뿐이다. 게다가 황제 [[프란츠 요제프 1세]]와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사이가 극악이었기 때문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에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미리 손을 써 뒀을 것이라는 말도 있고 일부 음모론자들은 사라예보 사건이 바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뒷공작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. 다만 대중적으로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오스트리아 황태자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 문서에서도 계속 '''황태자'''로 기술한다.]인 [[프란츠 페르디난트]] [[대공(작위)|대공]]과 그의 부인 [[조피 초테크 폰 초트코바|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]]가 [[세르비아]] [[내셔널리즘|민족주의]] 단체 "젊은 보스니아"(Mlada Bosna)에 속한 19세 청년 [[가브릴로 프린치프]]에게 [[사라예보]][* 당시에는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의 영토였으며 1918년 독립 이후 [[유고슬라비아 왕국]]에 속했다가 1990년대의 [[유고슬라비아 전쟁]] 이후 [[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]]의 영토다.]에서 총격을 받아 [[암살]]된 사건이다. 이 사건으로 [[7월 위기]]가 촉발되었으며 그동안 각종 곪아 있던 외교 및 정치적인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져나오면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든 '''[[제1차 세계 대전]]이 시작되었다.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